개념화의 함정
“역시 ‘또라이’일 줄 알았어, 거봐 또라이라고 했지.”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MBTI 결과를 보고서 보란 듯이 동료가 또라이임을 선언했다. 그것도 동료가 듣는 앞에서, 아니, MBTI의 어떤 유형이 또라이를 증명하던 것이었는지, 동료를 또라이라고 말한 동료는 MBTI 연수를 받아 본 적도 없다. 여기저기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가 다였다. 그러니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잘못된 잣대로 평가하기 위하여 MBTI 결과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윤리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때로는 무지가 의도보다 더 나쁘다. 자신의 무지가 나쁘다는 것에 대해서도 무지하니까. 다른 사람에 대해 고요하게 말하는 세상이다. 자음과 모음이 전혀 섞이지 않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언어 체계가 사회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오래 천천히 마주하는 벗은 점점 사라진다. 반면 속단하여 말을 뱉고 기꺼이 누군가의 적이 되기도 마다하지 않는 완벽한 타자만 넘쳐난다. 제발 나를 모르는 척 지나가리라고 먼저 모르는 척을 해도 꼭 아는 척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여덟 가지의 심리 검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만으로 불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MBTI는 융의 이론 중 극히 일부만을 가져온 것이라 과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검사 도구이다. 그래서 MBTI와 관련한 논문은 논문지에 실리지 못하고 논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냥 혈액형별 성격 유형처럼 즐거움을 위해서 혹은 나와 타인의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 정도로 쓰면 된다. MBTI 초급과 중금 과정까지 수업을 들을 때는 MBTI가 사람을 정확히 꿰뚫어는 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빠진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까지 계속 듣다 보면 사람은 정확히 규정해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다른 심리 검사 연수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주에 걸쳐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연수를 듣던 선생님과 우연히 MBTI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J 성향이 너무 싫어서 P 성향이 나올 때까지 MBTI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검사를 하고 또 해도 P 성향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실의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한 검사에서 드디어 P가 J보다 1점 더 나와서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1점의 점수는 그 결과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차이이고, 따라서 P라고 결론 내리기를 보류해야 한다. 심지어 그걸 본인이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데 만족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특정한 성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원인이 오롯이 자신에게만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 자기 인식이 부정적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이 그를 함부로 판단하여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부모에게서 끊임없이 형제자매와 비교를 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본인의 실제 성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문자화되고 문서화된 것에서나마 자신이 다른 사람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증받자 비로소 스스로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을 규정하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벗고 싶어 한다. 때로는 이름을, 때로는 타이틀을, 때로는 개념화된 나를,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채로 있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이 불안함이 되어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투쟁한다. 투쟁은 곧 스스로를 굴복시키고 나는 곧 무력화된다. 남이 아는 나만이 살아남아 곧 나를 대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나도 모르는 나와 나의 영혼에게 누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 여성 센터에서는 사람을 모집할
때마다 항상 지원자의 MBTI 유형을 쓰라고 한다. 그 단체는 그걸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할까. 자신들이 선호하는 혹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MBTI 유형을 쓰라고 했을까, 아니면 미리 지원자의 유형을 알고 난 후 그를 배려하기 위함이었을까. 배려가 목적이었다면 면접에서 물어보거나 입사한 후에 물어보아도 충분한 것이었으므로 누군가를 걸러 내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고작 MBTI 결과 하나로 누구를 얼마나 걸러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 책이 자신이 전부이므로 그는 무척이나 편협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MBTI만 공부한 사람은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에니어그램만 공부한 사람은 그게 또 전부인 줄 알기도 한다. 그림 한 장으로 내담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사람에게 그림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문가로서 윤리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이러한 심리 검사 도구를 다루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누군가를 쉽게 규정짓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기에. 첫 책을 냈을 때 내 책을 읽은 지인이 ‘이제야 언니가 왜 그런지 알겠다’고 했다. 그는 아마 세상에서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달고 있는 당신이,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도 마찬가지이다.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지음, 유노북스, 2022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