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효과
나무가 피우는 꽃, 열매, 가지, 잎사귀, 몸통을 나무라고 한다. 꽃이나 열매 하나만을 두고 나무라고 하지 않듯 사람도 그가 이룬 업적이나 가진 무엇 하나를 두고 그 자체라고 칭할 수 없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의 부분과 개개의 결과물만을 가지고 전체의 인격을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예를 들면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거나, 아예 그런 잘못을 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열매 자체를 나무라고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로 사람을 보고 대하는 방식이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를 평가하는 태도에 관해 실증적으로 연구했다. 지휘관들에게 부하 개개인의 역량을 성격, 지능, 체력, 리더십 등 다양한 항목별로 평가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지휘관들은 품행이 단정하고 인상이 좋은 일명 ‘모범 병사’로 꼽히는 일부 병사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높이 평가했다. 반면 다른 병사들에 대해서는 모든 항목에서 평균 이하로 평가했다. 지휘관들은 체격이 좋고 단정한 병사가 사격 실력도 좋고, 군화도 잘 닦고, 하모니카도 잘 분다고 여겼다. 또한 지성이나 리더십도 뛰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반면 못생긴 병사들은 매사에 실수가 잦고 일을 그르친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그가 가진 하나의 속성이 전체를 덮는 현상을 ‘후광효과’라고 한다. 후광은 말 그대로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사람을 빛나게 해 주는 배경이란 뜻이다. 즉 후광효과란 상대가 특출한 하나의 좋은 특성을 갖고 있으면 다른 것도 다 좋게 보는 현상이다. 예쁘면 다 용서가 되고 천사처럼 생긴 사람이 성격도 천사 같을 거라고 예측한다. 그 결과 생고생과 아픈 뒤통수 등등의 후회가 남았겠지만 기업에서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과 후원이나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이 물건도 잘 만들 거라고 예상하는 것도 이러한 후광효과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생이 교수가 호텔로 부르자 냉큼 달려갔다. 부를 만한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서. 남자 교수가 여자 대학생을 호텔로 부를 만한 일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친구들이 그 학생에게 무슨 생각으로 호텔로 갔느냐고 물었더니, 교수가 부르는 것이 우언이었지 호텔이 우선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수라면 인격이 훌륭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한 교수가 아무리 호텔에서 자신을 부르더라도 딴생각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것이다. 교수라는 직위를 가졌으니 그는 전반적으로 성숙할 것이며, 그곳이 나를 유린하기 위한 장소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런 생각으로 많은 여성들이나 약자들이 무장 해제되어 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성공한 엘리트들의 범죄나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등은 특정한 부분이 그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도로에서 한 실험을 했다. 양복을 매끈하게 차려입고 준수해 보이는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런데 이 남성이 갑자기 빨간 불에 도로를 건넜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남성을 따라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신호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멀끔한 사람을 보았고, 건널 때가 되었으니 건너겠지 하고 따라 건넜던 것이다. 반대로 허름하고 남루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자 아무도 그를 따라 무단행단을 하지 않았다.
한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하지 마라
후광 효과를 처음 연구한 손다이크는 후광효과를 ‘어떤 대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 그 대상의 구체적인 행위를 일반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고정관념과 편견의 양산해 내기도 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약간 다른 뜻이다. 고정관념은 누군가를 좋게만 보는 경향 혹은 나쁘게만 보는 경향이라면, 편견은 대상을 항상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이 어린 우리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 하나를 증명하기 위해 혹은 그 하나 때문에 그토록 힘들지 않았나. 나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 하나를 가지기 위해, 나를 못나 보이게 하는 배경 하나 때문에, 아마도 속담 중에 가장 폭력적인 속담이 아닐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니까 잘하라는 위협과 강압이 들어 있는. 고정관념은 때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하나 덕분에 모든 게 좋아 보이는 사람의 폭력을 참아야 하는 피해자를 양산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네가 먼저 꼬리 친 거 아니야?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 등등의 말로 위협하면서 말이다. 나의 한 부분으로 판단되는 것도, 누구를 한 부분으로 판단하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비논리적 귀결로 인해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당위적 폭력인 셈이다. 한 사람이 성취한 부분은 성취한 대로 그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 자체도 훌륭한지는 나중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다. 후광효과를 벗겨 낸 후, 무엇이 남는지 본 후에야 진짜 그가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를 이룬 것이지 인생을 이룬 게 아니므로 하나를 가진 것이지 전부를 가진 게 아니므로 실패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나를 못 가진 것이지, 열을 모두 잃은 게 아니다.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지음, 유노북스, 2022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