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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서 넘쳐흐른 찻물

by santa-01 2023. 9. 23.

스님
스님

잔에서 넘쳐흐른 찻물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좋은 집안에서 자란 젊은 선비가 총총 빛나는 총기로 열아홉 어린 나이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가 스무 살에 처음으로 나간 관직은 경기도 파주 군수였다. 그래서 그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어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이었다. 그가 군수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파주 근처 산골 암자에 학문과 덕망이 높다는 무명 선사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 나이가 많다지만 스님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내 가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것이야.’ 그 다음날 산골 암자로 무명 선사를 찾아간 그가 물었다. “스님 군수인 내가 어떻게 해야 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겠소?” 도도하고 오만한 젊은 군수의 속마음을 읽은 무명 선사가 타이르듯 조용히 대답했다.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좋은 일만 하면,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스님,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 아니오.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란 말이오.” 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버럭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선사는 빙그레 웃고 나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지요, 삼척동자도 아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팔십 된 노인도 어렵습니다. 자자, 험한 길을 오셨으니 화를 거두시고 차 한잔하고 가시지요.” 선사가 붙잡자 그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선사는 정성스레 달인 차를 그의 찻잔에 따르면서 먼 산을 보며 한눈을 파는 척했다. 잔에서 찻물이 넘쳐흘러 방바닥을 적시고, 방석과 책도 적셨다. 그것을 보고 당황한 그가 소리쳤다. “스 스님, 그만 따르시오. 잔에서 넘쳐흐른 찻물에 방바닥이 젖어 엉망진창이 되었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작은 잔에서 넘쳐흐른 찻물이 방바닥을 적시고 방석과 책도 적시는 것을 보면서, 작은 머리에서 넘쳐흐른 지식이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못 본단 말입니까?” “....” 이 말에 크게 깨우친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다 방문을 열고 부리나케 나가려다가. “!” 자기 키보다 낮은 문틀에 머리를 부딪혀 눈에서 번쩍 불까지 일었다. 그러나 그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쩔쩔맸다. 이 모습을 본 무명 선사가 미소를 짓고 젊은 군수에게 말했다. “고개를 숙일 줄 알면 부딪치지 않습니다.” “......” 이 말에 젊은 군수는 넙죽 엎드려 무명 선사에게 큰절을 올리고 돌아갔다. 이 젊은 군수가 바로 맹사성(1360~1438)이다. 그는 이후 호를 옛 부처라는 뜻인 고불이라 고쳤다. 그런 다음 자만심을 떨쳐 버리고 겸손하며 예의 바른 사람으로 거듭나,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기 지식을 함부로 자랑하지 않았고 자기 집 하인들도 가족처럼 위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1397~1450) 때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맹사성은 계속 자기 수량을 게을리하지 않아 성품도 청백, 검소해졌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벼슬이 낮은 손님이 찾아와도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까지 나가 예의를 갖추어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돌아갈 때에도 몸을 숙이고 손을 모아 공손하게 배응하고 손님이 말에 올라앉은 뒤에야 들어왔다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이야기, 박민호 엮음, 도서출판 평단, 201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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