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상실
주변에 일찍부터 어른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몇 있고, 그를 억울해하는 사람이 몇 있다.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른스러움에, 억울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잃어야 했던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리라, 결론은 이러나저러나 같은 것이겠지만, 어린 시절을 상실하고 일찍 어른이 된 사람은 감정의 공백을 자주 경험한다. 어린 시절을 잃을 때 자신의 감정도 같이 상실해 버린 탓이다. 어린 나를 어른인 척 분칠하는 사람도 아이의 때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를 꼭 끌어안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상실이 우리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활보하고 다니는지를 몰랐을 뿐. 또래보다 어른들과의 교류가 더 많았던 덕에 자신이 일찍 철이 들었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 보니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들, 그야말로 할머니가 대부분인 세상에서 자랐다. 사실, 나이가 들면 아이처럼 철이 없어지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할머니들에 둘러싸여 자랐다는 것 자체가 그가 일찍 철이 들었다는 사실의 근거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어린 사람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말이 더 잘 통한다고 했다. 왜 자꾸만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나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는 감정이 흘러넘쳐 잔여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지 못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부들부들 떠는 일도 잦았다. 극심한 우울감에 기분이 바닷속으로 끝없이 하강했다 뭍으로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불안감이 엄습해 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었다. 감정의 변화를 다 겪을 때까지는 자신이 일에서조차 손을 떼고서 정물화처럼 굳어 있기도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숙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릴 때 성장을 멈추어 버려 어른이 된 지금 자신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내면은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였으므로, 자신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서 자신이 다 큰 줄로만 착각하면서.
영혼도 성장하는 시기가 있다.
어린 시절을 잃고 감정을 잃은 사람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해 본 적 없으니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떤 감정에서 쉽게 헤어나지도, 감정을 잘 조율하지도 못한다. 자연스레 밖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감정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는 통제할 수 없는 정도로 밖으로 빠져나오고 폭발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는 발달의 과정을 고스란히 다 겪어야 마침내 힘이 생긴다. 어릴 때는 최대한 어린 시절을 누리며 어린아이로 살아야 자사의 빈곤에 빠지지 않으며 특정한 나이대에 갇히지 않는다. 몸은 성장해도 영혼은 어린 나이에 성장이 끝나 버리고 멈추어서 성숙하지 않는 것이다. 유아, 아동, 청소년의 때를 겪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정신과 마음, 영혼은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아이에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마음껏 어릴 수 없고 일찍 세상을 알아야 했던, 집안일을 하며 어른의 역할을 해야 했던, 부모 대신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사람은 당시에 존엄한 대상이었다고 할 수 없다. 아이에게 어른의 일을 시키며 강제로 아이의 때를 끝내게 만든 것이 어찌 존엄하다 할 수 있을까. 어린 나를 일찍 포기하고 반납했던 사람은 심리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고 감정적으로 외로워진다. 죄책감, 감정적으로 얽매여 있는 것 같은 기분, 억압된 분노, 비이성적인 사고, 불안과 과도한 욕구불만, 정서 조절의 부재, 자기중심적 태도 등의 문제를 겪는다. 물론 모두가 이런 문제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믿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믿건 믿지 않건, 인정하건 하지 않건 일어날 수 있다. 상처란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므로.
감정의 나이를 찾아서
초등학생일 때 친구에게 “너는 너무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어른스러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버지에게서 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힘들다고 징징거릴 수도, 떼를 쓸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엄마의 하소연을 묵묵히 견뎠다. 어른들의 세계는 아름답지 않구나. 남편이 아내를 아주 쉽게 배신할 수 있는 거구나. 돈이 없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뜻이구나. 세상은 강한 자 앞에서 아주 쉽게 허리를 굽히는구나. 그래서 권력을 가져야 하는 거구나. 어린 나는 아직 마주하지 않아도 좋았을 세상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이미 어른이었던 자신은 성숙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실은 감정적으로 가장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인정하기 어려워 잡아 본 적 없는 감정의 실체 같은 건 나와 분리하고서 결점이 되지 않게 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른 척 눈감는 것이 나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나. 사람마다 감정의 나이라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을 빨리 끝낸 사람일수록 감정의 나이가 어리다. 그리고 육체적 나이가 아니라 감정의 나이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다 커서 제2의 사춘기가 왔다고 느껴지는 건 실은 성장이 멈춘 내면의 나이를 이제야 깨닫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인 일은 감정의 나이를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놓치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정보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잃었던 감정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정서적으로 어릴수록 성숙해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성숙이라는 겉모습에 갇혀 어린 내가 보이지 않고 어린 나를 위로할 기회마저 잃는다. 이제 피어나지 못한 꽃에 물도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바람과 햇살을 맞게 해 주며 영혼의 성장에 기다려 보자. 경건하게.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지음, 유노북스, 2022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