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을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게 되는 '알 수 없어'
“젠장!” “제기랄!” “빌어먹을!” 나쁜 일이 있을 때 나오는 이런 말에는 사실 공통점이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난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고 있는데 주의를 받으면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수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상대에게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도전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젠장’하고 욕을 하면 ‘잘 풀릴 것 같았는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기분도 노력의 결과도 훤히 보이는데 현실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불평이 말투로 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타인의 기분은 내 생각대로 바꿀 수 없고 미래의 결과 역시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원래 알 수 없는 것들뿐인데 알고 있다고 혼자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알고 있는 듯한 기분만으로 혼자 멋대로 기분 나쁘다고 욕을 퍼붓는 격이다. 이 부정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떤 말투가 효과적일까. ‘알 수 없어.’ 이 말은 사용하면 욕하는 버릇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예측할 수 없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고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반면 상사에게 기획서를 제출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면 ‘제기랄’하고 욕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해 보자. 내 기획이 정말 형편없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라고 말해본다. 형편없는 기획인지 어떤지 알 수 없으니 그 기획서는 다음에 다시 활용하면 된다. 평소대로 기획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고 거절하는 상사에게 화가 나서 ‘제기랄’하고 욕을 하면 분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불평이나 욕설을 ‘알 수 없어’로 바꾸어 보면 상사의 이미지도 달라진다. 저 사람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냉정한 시점에서 그 말을 파악할 수 있다. 냉정한 시점에서 보면 기획이 성공할 가능성도 ‘알 수 없어’에서 언젠가 쓰일 곳이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바뀐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데이트 시각을 얼마 앞두고 애인에게 회사 회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하자. 평소라면 험한 말이 튀어나오고 분노를 가득 담은 답장을 보내 분위기를 싸늘해질 것이다. 그럴 때 ‘알 수 없어’라고 말해보면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지 미워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데이트는 다음에 해도 된다고 화를 진정시킬 수 있다. 고정관념으로 타인의 기분을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알 수 없어’라고 말투만 바꿔도 미래의 일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워질 것이다. -말투 하나로 의외로 잘 되기 시작했다, 오시마 노부요리 지음, 장은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 2019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