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맥주에 ‘고급 맥주’ 벨을 붙여서 마시게 하면 애호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야, 역시 비싼 와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혀에 착착 감기는 게 맛이 끝내주는걸!’ ‘싼 게 비지떡이라잖아, 비싼 술은 확실히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니까!’ 자신이 지불한 금액에 따라 요리나 음료의 맛을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게 인지상정이다.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알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값이 비쌀수록 좀 더 맛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자는 태생적으로 사람을 속이기 좋아하는 족속이라 종종 짓궂은 실험을 하곤 한다. 한 심리학자가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하여 싸구려 와인에 ‘최고급 와인’ 라벨을 붙여 사람들에게 마셔보라고 권했다. 와인을 마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냈다. “와, 어디서 이런 근사한 와인을 구했어요? 맛이 정말 좋은데요!” 맥주 애호가 중에는 맛을 보면 좋은 맥주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과연 살짝 맛만 보고도 맥주의 품질을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교 J. 더글러스 매코널(J. Douglas McConnell) 교수는 맥주 애호가 60명을 불러 모아 며칠 동안 실험을 했다. 매코널 교수는 참여자들에게 3종류의 맥주를 마시게 한 뒤 각각의 맥주에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실험 참여자에게 지급된 맥주는 모두 같은 종류로, 라벨에 적힌 가격만 달랐다는 사실이다. 실험 참여자들은 자신이 마신 각각의 맥주에 어떤 점수를 주었을까? 그들은 매일 한 병씩 맥주를 마신 뒤 0~4점의 범위 안에서 점수를 매겼다. 매코널 교수는 ‘마시기 힘들 정도로 맛이 형편없다’라면 0점을, ‘맛없는 편’이라면 1점을, ‘보통 맛’이라면 2점을, ‘맛있는 편’이라면 3점을, ‘굉장히 맛있다’라면 4점을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이떤 결과가 나왔을까? 흥미롭게도 결과는 처참했다(이 실험 결과로 나온 맛 평가 점수는 1.30달러의 맥주는 2.23점, 1.20달러의 맥주는 1.93점, 0.99달러의 맥주는 1.8점이다) 참여자 60명 전원이 맥주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진 애호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평소 ‘한 모금만 마셔도 단박에 맥주 품질을 정확히 판별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랜드명도 알아맞힐 수 있다’라고 장담해 온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뜻밖의 결과였다. 장담한 대로라면 그들이 매긴 점수에 차이가 없어야 함은 물론이고 실제 품질과도 일치해야 했다. 맥주 맛 실험으로 증명되었듯 우리 인간은 음식물의 맛을 정확히 판별하지 못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눈앞에 제시하는 가격에 영향받지 않고 오로지 미각과 후각에 의지해서 정확히 맛을 감별하고 품질을 판별해 낼 수 있다’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이상을 배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 혹은 현실과 인식의 괴리가 맥주 맛을 판별하는 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거의 매 순간 ‘현실과 인식’의 괴리를 느끼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백 퍼센트 확실하고 여기는 일이 틀릴 수 있고 거짓으로 판명 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맥주 맛 판별 실험은 우리가 가진 사물이나 사람, 세상에 관한 인식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그러므로 우리가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사물과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대면해야 한다는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준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서수지 옮김, 주노 그림, 사람과나무사이, 2020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