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과 외향인
한 유명인을 만나 본 방송국 스태프가 투덜거리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그렇게 데면데면한 사람은 처음 봐. 촬영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촬영하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스태프들한테 눈길도 잘 안 주고, 뭘 사다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하더라고, 그러더니 자기가 아는 다른 유명한 사람이 나타나니까 세상 반가운 것처럼 인사하고 난리를 치더라. 자기보다 더 유명한 사람한테만 웃으면서 사진 찍고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지, 완전히 이중인격이야.”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만난 사람과 데면데면한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싶었다.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을 오래 만난 사람처럼 대하는 게 관계에 경계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촬영이야 자신의 일이니까 촬영에 들어가는 순간 직업인으로서 웃는 게 당연하다.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휴식 시간에는 그도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나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기대일 뿐이지 않나.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태도와 인성을 들먹이는 것은 인지 부조화의 전형일뿐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낯선 이들과 있을 때는 말수가 적어지다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말문이 터지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 유명인의 데면데면한 태도는 사람을 차별해서도, 성공에 눈이 멀어서도, 인성이 나빠서도 아닌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교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을 외향인, 사교적이지 않고 집에만 있기 좋아하는 사람을 내향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많은 이가 내향적인 사람을 향해 “그렇게 사교적이지 못해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부터 “그런 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니 성격을 바꾸라”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유명한 배우들 중에는 스스로 내향적이라 고백하는 사람이 꽤 많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배우 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친근하거나 친절하지 않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고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향인에 대해서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의 판단 기준은 자신인가 타인인가.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이 성격에 따라 내향인과 외향인을 처음 구분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 기준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내향인이라 했고, 주변인의 판단과 외부의 정보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외향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내면이 자기를 향하느냐, 외부로 향하느냐로 구분된다. 모두가 ‘네’를 외칠 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자장면을 주문할 때 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은 외향인이 아니라 오히려 내향인이다. 외향인이 자신의 의견을 더 잘 피력할 것 같지만, 실은 내향인이 남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더 예민하며 자기주장이 강하다. 물론 이것이 덜 사교적인 이유라고 말한다면 조화와 동화의 뜻이 엄연히 다름을 배울 필요가 있다. 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쪽이 더 사교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외향인은 낯선 사람과 환경에 개방적이라 익숙한 사람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반면 내향인은 낯선 사람보다 익숙한 사람을 더 편하게 여긴다. 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 중 누구와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느냐가 다를 뿐이지, 누가 더 사교적이고 덜 사교적인지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다. 외향인이 사회생활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서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외향인이 친구가 십년지기 친구인 나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똑같이 대면한다면 나의 입장에서는 퍽 섭섭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모든 성격을 내향인과 외향인 딱 두 가지의 기준으로만 나눌 수 없다. 내향과 외향의 경계가 모호하고 검사 결과에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둘 사이를 넘나드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또한 겉으로는 외향인이지만 속으로는 내향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날따라 하필 상황과 환경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날따라 하필 기분이 다운되었거나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있어 가진 정보의 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는 드러나는 것에 한정해서 혹은 나의 편견에 의지해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는 왜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으냐고 내 기대를 충족해 주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멀어지지 않아도 좋았을 사람이 그렇게 멀어지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지음, 유노북스, 2022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