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답지 못하다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이 자주 주고받는 말 가운데 ‘너답지 못하다’는 묘한 뉘앙스의 말이 있습니다. 그 위력은 가히 ‘울트라 슈퍼 짱’이라 할 만합니다. 대개 듣는 사람을 옴짝 달짝 못하게 옥조이니까요.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에 합당한 대거리를 하지 못하는 것일 뿐 그 말을 전적으로 수긍해서 침묵하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도 압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답지 못하게 왜 이래?’라는 힐난성 대사 뒤에 ‘나다운 게 뭔데?’라는 울부짖음이 연결 숙어처럼 따라붙는 건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거겠지요. 늘 적은 장작 타듯하다 화산처럼 폭발하는 신사임당 옷차림에서 손바닥 한 뼘 길이의 미니스커트로 갈아입든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나’답지 못한 행동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상대방의 눈에만 ‘너’답지 못하게 비칠 뿐이지요. ‘너답지 못하다’는 말은 상대방을 옴짝달짝 못하도록 심리적 올가미를 던지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뭔가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도하려는데 누군가 내게 ‘너답지 않게 왜이래’라고 말할 때 뱀처럼 휘감기고 늪처럼 허우적거리게 하는 그 질척한 느낌, 얼마나 싫고 맥빠지는 지 잘 아시잖아요. 본의는 그게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너답지 못하다’고 내뱉는 순간 나는 상대방에게 뱀이 되고 늪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홀가분, 정혜신·이명수 글, 전용성 그림,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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