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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되고, 나는 안돼?

by santa-01 2023. 10. 2.

불륜과 로맨스
불륜과 로맨스

귀인오류

구청에서 상담사로 일할 때였다. 동료 중에 허구한 날 다른 동료의 뒷말을 일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과 만나면 저 사람의 뒷말을, 저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의 뒷말을 돌아가며 했다. 뒷말의 대상이 동료 전부였던 셈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뒷말을 알고 있었으니 사실 뒷말도 아니었지만. 뒷말의 내용도 가지각색이었다. 본인이 제대로 배우지 않아 업무가 느리면서도 스스로 알고자 하는 의지는 접어 두고 동료가 일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고 깔끔을 떤다고 일을 잘한다고 또는 이유 없이도 뒷말을 해댔다. 쉰이 넘은 나이였는데 공자가 쉰이 되면 뭐 어떻게 된다고 했더라? 하늘의 뜻을 안다고 지천명은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 분명했다. 어느 날 그는 씩씩대며 다른 동료를 욕하고 있었다. “나를 대체 뭘로 보고 나한테 다른 동료 뒷담화를 까? 내가 뒷담화나 들어주는 사람처럼 생겼어? 내가 그렇게 우스워? 내가 기분이 나빠서, .” 요샛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했던가.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평소 그렇게 남의 말을 대놓고 하던 사람이 다른 동료가 남의 흉을 보자 갑자기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그는 정의로웠던 것이다.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남의 흉을 보아도 정의로운 일이었고 남이 남의 흉을 보는 건 그야말로 흉인 거였다. 놀라운 이중 잣대여, 부끄러운 줄 모르는 까만 마음이여. 프리츠 하이더라는 심리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귀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귀인이란 관찰된 행위의 원인을 다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더는 귀인을 내부와 외부로 구분했다. 내부는 행동의 원인을 성격이나 생각 등 개인에게서 찾는 것이고 외부는 환경이나 상황에서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모두 내부 귀인의 결과이다. 남에 대해 끊임없이 뒷말을 하고 미워할 요소를 찾던 동료는 다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져서 자기에서 불친절했다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저런다며 내부 귀인을 했다. 자기가 하는 욕은 상대가 욕먹을 짓을 했기 때문이고, 남이 하는 욕은 인격이 온전하지 못해서인 것이다. 이처럼 행동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만 하는 것을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한다. 기본적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오류라는 뜻이다. 귀인 오류는 자신이 관찰자인지 행위자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를 행위자-관찰자 편향이라고 한다. 동일한 행동에 있어서 자신이 관찰자인 경우에는 내부 귀인을, 행위자일 경우에는 외부 귀인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이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운전이 미숙하거나 난폭 운전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자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할 때는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라고 한다. 같은 불륜을 저질러도 자기가 할 때는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셈이다.

 

평가는 늦을수록, 안 할수록 좋다.

귀인 오류는 사람의 시야가 좁기 때문에 발생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이 잘못했을 때는 상황보다 잘못하는 사람이 먼저 보이지만, 자신의 잘못에서는 더 넓은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또한 남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 않는가. SNS에서 한동안 화제가 된 이야기가 있다. 한 의사가 자신이 수술한 환자의 보호자에게 무미건조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보호자는 의사의 거만함과 성의 없는 태도에 분노했다. 보호자의 분노한 모습을 본 다른 의료진이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의사가 얼마 전 아들을 잃었고 여태 장례식장에 있다가 부랴부랴 수술하러 왔다가 다시 장례를 치르러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의 상황까지 세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확한 상황을 알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평가를 보류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좋고, 아예 없으면 더 좋은 법이니까. 인간에게는 잘되면 제 탓, 못되면 남 탓을 하고 싶은 내밀한 본능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다행히 양심과 죄책감이 있어 스스로를 타이를 수 있기도 하다. 남 탓이나 해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을 때조차 행여 나로 인해 숨을 못 쉬는 사람이 생길까 봐 스스로를 단속한다. 그것은 곧 나를 낡은 채로 버려두지 않기 위함이리라. 우리의 눈을 가린 것들을 벗어야 드디어 문제의 본질이 남는다.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지음, 유노북스, 202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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